금쇄동이라는 이름은 윤선도가 54세이던 1640년, 꿈에서 '금쇄석궤'를 얻은 뒤 며칠 만에 그 꿈과 꼭 맞는 장소를 찾아낸 데서 붙었습니다. 산 정상부가 분지처럼 생긴 곳으로, 고산은 이곳을 은거지로 삼고 연못과 정자를 만들어 원림을 꾸몄습니다. 유적 안에는 고산 재각과 윤선도의 묘도 있습니다.
금쇄동 윤선도 유적, 「금쇄동기」 속 22경과 보물로 지정된 기록
고산은 이곳에서 「산중신곡」과 「금쇄동기」를 썼고, 「금쇄동기」에서 22곳의 경치에 지명을 붙여 노래했습니다. 그 지명들이 산성의 동북쪽 일대에 이어집니다. 「금쇄동기」, 「금쇄동집고」, 「산중신곡」 등은 보물 제48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