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 유적은 고산 윤선도가 54세 되던 1640년(인조 18년)에 머물며 『금쇄동기』 등 여러 글을 쓴 금쇄동과, 그 안의 현산고성을 함께 묶은 곳입니다. 『금쇄동기』는 보물 제482-2호입니다. 윤선도는 벼슬을 내려놓은 뒤 보길도 부용동과 이곳 금쇄동에 정자와 각을 지어 지냈습니다.
해남 윤선도 유적, 22개 지명이 붙은 문학 산책로와 원림
윤선도는 옛 성 안에 원림을 꾸미고 『금쇄동기』에서 22곳에 이름을 붙였습니다. 글감을 얻으려고 일부러 닦은 산책길로, 지금도 건물 터와 연못 터가 남아 있습니다.
해남 윤선도 유적, 고려 때 쌓은 것으로 보는 현산고성
금쇄동 안의 현산고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, 동문·서문·북문 세 곳의 문 터와 수구, 망루 터, 건물 터, 제방이 남아 있습니다.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옛 성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큽니다.